■ 해넘이, 해맞이 명소 ■
장흥군 관산읍 시금마을 바닷가가 바로 정남진 현장. 서울 광화문에서 똑바로 남쪽으로 줄달음치면 만나는 곳이다.
강릉은 정동진 장흥은 정남진' 보성하면 `녹차', 강진하면 `청자'가 바로 떠오르듯 각 지역마다 특색있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장흥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딱히 떠오를만한 것이 없었지만 `정남진'(正南津)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면서 장흥의 새로운 이미지로 부각되고 있다.
해돋이로 유명한 강릉 정동진이 있듯이 장흥 관산읍 사금마을 바닷가에는 정남진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에서 직선방향으로 바로 남쪽으로 줄달음치면 만나는 포구가 바로 정남진이다.
물론 `정동진'이 전국적인 관광지로 유명해진 것에 비하면 정남진은 아직 세인들에게 알려지지않는 미지의 땅이다.
정동진은 이미 인파와 더불어 모텔과 유흥업소 등 이른바 `관광공해'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남진은 오지인데다 아직 잘 알려지지않은 미지의 땅으로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곳이다.
주변 경관도 해안도로를 따라 이루워져 있으며 정남진 가까이에는 삼산 방조제를 비롯해 수평선 동쪽 약 20㎞지점에 고흥반도 소록도와 아름다운 섬으로 유명한 완도군 금당도(꽃섬) 등 바다가 훤히 바라다 보이는 해변이 장관이다.
또 도립공원 천관산과 그 남쪽자락에서 새로운 관광명소로 부각되고 있는 천관산 문학공원이 위치하며 고려 인종왕비이자 의종, 명종, 신종의 어머니로서 장흥이란 지명을 낳게 한 공예태후 임씨의 탄생지, 그리고 방촌 문화마을과 지석묘 군이 산재해 있다.
이와함께 축제의 촬영지로 해맞이 행사가 일품인 남포 소등섬, 안양 수문의 해수탕 등 해안 주변에 관광자원이 풍부해서 관광자원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청정해역인 득량만에 있는 정남진 바다는 무엇보다 갯벌이 찰져 석화,바지락, 꼬막, 짱뚱어 등 입맛을 한껏 돋우는 해산물이 풍부하다.
삼산 방조제, 회진 포구 등에서 느껴보는 바다낚시의 손맛도 일품이다.
특히 썰물과 밀물이 갈릴 때 미리 쳐둔 그물에 걸려든 숭어, 돔, 낙지, 게 등을 건져내는 전통 고기잡이 `개매기'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정남진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올해초부터다. `정남진'은 장흥군의 한 주민이 강릉 정동진이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부각된데 자극받아 국립지리원에 정남진의 정확한 위치를 문의하면서 비롯됐다. 정동진처럼 인기 높은 관광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립지리원은 경도 126도 59분 위도 34도 32분에 자리한 관산읍 신동리 사금마을 앞 지점이 `정남진'으로 공식확인했고, 장흥군은 관산읍 신동리 시금마을을 둘러싼 인근 안양면, 용산면, 회진면, 대덕읍을 정남진으로 명명했다.
■ 해수욕장 ■
장흥군 안양면 수문리에 소재한 수문포 해수욕
장은 장흥읍에서 동남쪽으로 16.1km떨어져 있다.
그리 넓지 않는 백사장은 남해의 청정해역인 득량만의 넓은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며, 백사장위로 소나무숲이 울창하게 어우러져 여름 피서객들의 더위를 한층 덜어준다.
또한 인근 사촌리와 연결되는 해안일주도로를 따라가면 장재도와 갯바위 낚시터와 함께 남해의 정취를 흠뻑 만끽할 수 있다.
사시사철 득량만의 풍부한 어족 등으로 싱싱한 활어 맛을 느낄 수 있으며, 키조개, 피조개, 대조개의 자연서식지이다.
특히 이곳의 자랑거리인 바지락회 맛은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 있다.
해수욕은 매년 7월 15일부터 8월 15일 까지 즐길 수 있으며 해수면이 완만하여 전남지방에서도 안전한 해수욕장을 꼽히고 있다.
샤워시설(1동), 화장실(2동), 파고라(3개소), 탈의장(1동), 주차장(1개소), 음료수대(2개소), 민박 등 완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 장흥 사찰문화의 보물창고....'보림사' ■

가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림사는 지금부터 1천 3백여년전에 창건한 신라시대의 거찰이다. 이곳에 처음 절을 지은 것은보조국사보다 100년 전쯤 사람인 원표대덕(元表大德)으로 원래의 이름은 가지산사였다. 그 뒤 보조국사 체징이 이곳에서 헌안왕의 뜻을 받아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로 가지산파를 열었다. 880년 체징이 입적할 때에 무려 800여명의 제자들이 여기에 머물렀다고 한다. 보조국사가 입적 후에 헌강왕이 절이름을 내려주어 보림사가 되었다. 화엄종 사찰로 출발해 선종사찰로 바뀐 것이다. 미국하버드대학 연경도서관에 있는 "신라국 무주 가지산 보림사사적기"는 조선 초 세조 3년(1457)에서 10년(1464)사이에 발간된 것으로 보림사에 대한 가장오래된 기록이다. 여기에는 창건설화가 이렇게 적혀있다.신라의 명승 원표대덕이 인도 보림사, 중국 보림사를 거쳐 참선중 한반도에 서기가 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신라로 돌아와 전국의 산세를 살피며 절 지을 곳을 찾았다. 어느날 유치면 가지산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데 선녀가 나타나더니 자기가 살고 있는 못에 용 아홉마리가 판을 치고 있으므로 살기 힘들다고 호소해왔다. 원표대덕이 부적을 못에 던졌더니 다른용은 다 나가고 유독 백룡만이 끈질기게 버텼다. 원표대덕이 더욱 열심히 주문을 외었더니 마침내 백룡도 못에서 나와 남쪽으로 가다가 꼬리를 쳐서 산기슭을 잘라놓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 때 용꼬리에 맞아 파인 자리가 용소(용문소)가 되었으며 원래의 못자리를 메워 절을 지었다. 보림사 주위에는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청룡리, 청룡이 피를 흘리며 넘어간 피재, 용두산, 용문리, 용소, 녹룡리등인데 창건설화에서 토속신앙과 불교의 대립이 있었음을 유추하는 사람도 있다.
▷ 보림사 주요문화재
국보 제44호 : 삼층석탑 및 석등
국보 제117호 :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 155호 : 동부도
보물 제 156호 : 서부도
보물 제 157호 : 보조선사창성탑
보물 제 158호 : 보조선사창성탑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 85호 사천왕문
▷ 교통편
광주 → 나주 → 23번국도 → 장흥 유치면 송정리 → 좌회전 → 3.1Km → 좌회전 → 2.6Km → 가지산 보림사
■ 천불천탑의 신비 간직한 사찰...'화순 운주사' ■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 왕건의 삼국통일을 예견했던 도선국사가 하루 밤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불가사의의 전설이 전해지는 신비의 절 운주사. 지금도 석탑 17기와 석불 80여기를 비롯해 절주변 곳곳에 크고 작은 석불과 탑들의 흔적들이 산재해 있어 천불천탑의 존재를 뒷받침하고 있다.
운주사는 화순읍에서 30km 거리의 작은 산골에 숨은 듯 자리잡고 있다. 여느 절처럼 명산명곡(名山名谷)도 아니요. 넓고 큰 들판도 아닌 아주 작고 움푹 패인 골속에 그 처럼 신비로운 불사가 있다는 게 의아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다. 운주사에 들어가면 일주문을 통과하면서부터 이어지는 작은 협곡 전체가 탑과 불상으로 꾸며져 있음을 보게되는데, 얼핏 생각해도 예전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운주사는 신라말기 도선국사가 나라의
기운을 바로잡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일설에는 우리나라가 바다를 가는 배의 운를 가지고 있는데 동쪽에는 산이 많고 서쪽에는 산이 없어 자꾸만 국운이 동쪽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운주사를 세우고 배의 기울음을 바로잡아주는 돛대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도선국사가 우리나라의 국운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감을 보고 이를 막기 위해 사람의 명치에 해당하는 이곳에 운주사를 세웠다고 전한다.
운주사를 찾음에 있어서 무작정 돌부처와 돌탑의 생김만을 보고 실망해서는 안된다. 미리 그 배치와 의미를 알고 감이 중요하다. 다른 사찰에서 보았던 잘 생기고 정교하게 짜여진 석불이나 탑들이 비하면 운주사의 석불과 돌탑들은 왠지 엉성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다. 그것이 오히려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작품을 보는 듯 편하기까지 하다. 얼핏 석불들은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들이 무질서 하게 나열된 듯도 한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운주사에서 일주문 다음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9층 석탑이다. 운주사에서 가장 크고 수려한 탑이다. 부여 정림사지의 5층 석탑과 형식이 같은 것이라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탑신석 안에 겹마름모꼴의 무늬와 꽃잎문양이 그려져 있는 데 이는 국내에서 유일한 모습이라 한다. 창건설화에 따른다면 운주사 중심탑이며 돛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 뒤로 7층석탑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데, 운주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할만 하다.
7층석탑을 지나면 천왕문을 들어가기 직전에 보물 제 797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조불감을 보게 된다. 팔작지붕 형태의 돌집안에 두분의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는 신기한 모양이다. 두분의 석불은 정확히 남과 북을 바라보고 있단다.
대웅전 뒤로 산중턱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고 그 위에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모습을 운주사 입구에서부터 볼 수 있다. 운주사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는 곳인데, 옛날 도선국사가 절을 창건할 때 이곳 바위에 앉아 공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을 공사바위라 하고, 바위 에는 도선국사가 앉았다는 곳이 마치 의자마냥 움푹 패어져 있다. 그리고 왕건이 탄 말의 발굽이라는 흔적도 여태 남아있다. 왕건이 나주를 점령하고 점령군을 주둔시켰던 곳이 바로 운주사 건너라는 것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어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운주사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역시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와불과 칠성바위다. 두 곳 모두 대웅전에서 오른쪽 언덕위에 있다.
와불은 석북을 조성하고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한 불완전석불인데, 좌불(앉은 모습)과 입상(선 모습)으로 자연석 위에 조각된 채로 누워있다. 이렇게 좌불과 입상의 형태로 누워있는 부처님은 세계에서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 와불은 좌불 12.7미터, 입상 10.26미터의 대단히 큰 불상이다. 나침반을 갖다대면 거의 정확히 남북으로 향하고 있다. 또한 와불의 아래에 있는 시위불도 와불 옆에서 떼어내 세운 것이다.
와불에서 정남쪽 아래로 크기가 각기 다른 7개의 둥근 바위가 놓여있는데 그 모양이 흡사 북두칠성일 뿐 아니라 각기 다른 돌의 크기와 북두칠성에 속한 각별들의 밝기가 같은 비율이라 한다. 뿐만아니라 칠성바위를 기준으로 했을 때 와불은 북극성의 위치에 있으며 나머지 큰 부처와 탑들이 밤하늘의 일등급 별들의 위치와 똑 같다고 한다. 즉, 운주사는 천체를 땅에 옮겨다 놓은 형상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알고가면 더욱 신비로운 곳이 바로 운주사다
▷ 교통편
1. 광주에서 너릿재터널을 지나 화순읍까지(국도22·29호선) 온후 화순중앙병원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국도 제 29호선을 따라 능주까지 간다음 우회전하여 지방도 822호선을 따라 도곡 효산리를 거쳐 평리사거리에서 좌회전 한 후 지방도 817호선을 따라 클럽 900입구, 도장마을, 도암면소재지에 이르고 도암 삼거리에서 곧장가면 월전마을, 용강저수지를 지나 우회전하면 운주사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 걸어서 5분이면 천불천탑이 있다.
2. 광주대학교에서 칠구재터널을 지나 전남학숙과 도곡온천을 경유하여 평리사거리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광주 -(12km)- 화순 -(10km)- 능주-(5.1km)- 평리사거리 -(2.4km)- 클럽900 -(2.8km)- 도장리 -(8km)- 도암삼거리 -(3km)- 운주사 광주대학교 -(11km)- 도곡온천 -(4.4km)- 평리사거리 -(2.4km)- 클럽900 -(2.8km)- 도장리 -(8km)- 도암삼거리 -(3km)- 운주사
■ 보성 녹차밭 ■
보배로운 고장, 보성의 자랑은 역시 차밭(茶園)이다.
보성읍에서 율포해수욕장 가는 도로(국도18호선)를 따라 8km쯤 가다보면 봇재에 이른다. 밭 아래로 구비구비 펼쳐지는 차밭이 득량만의 싱그러운 바다를 아우르며 온 산을 뒤덮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치 비단 물결인 듯, 녹색의 카펫을 깔아놓은 듯, 어쩌면 잘 다듬어진 정원수 모양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차밭을 갖고 있는 보성은 산비탈을 개간해 조성한 차밭이 대부분이기에 맛과 향이 야생차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고급차가 생산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보성에는 야생차가 많았고 지금도 3ha가 넘는 야생 차밭이 있어 광복 이후에 조성한 차밭이 아니더라도 차의 고장으로 자랑할 만하다.
차는 물빠짐이 좋고 밤과 낮의 온도차가 크며 안개가 많은 곳에서 생산된 것이라야 색과 맛, 그리고 향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보성지방의 기후는 좋은 차를 생산하기에 더할 나위없는 환경으로 천혜의 자연조건이 되고 있다. 1939년부터 인공으로 차밭을 일구기 시작한 이래 1960년대에 대규모 차밭을 조성함으로써 한때 600ha가 넘는 차밭을 가지고 있었지만 국내 차산업이 부진했던 탓에 지금은 330ha의 차밭이 있으며 전국 차 생산량의 약 40%를 점하고 있다. 보성군에서는 차의 본 고장임을 자처해 1985년부터 해마다 5월 10일이면 다향제(茶鄕祭)라는 전국적인 차문화 행사를 열어 다신제(茶神祭), 차잎따기, 차만들기, 전국 유일의 해수녹차·온천탕의 개발 등 차의 다양화와 실용화를 모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차를 주제로 한 음식의 개발, 차를 먹인 쇠고기(綠牛)와 돼지고기(綠豚)의 상품화 등 차의 가치를 높이는 노력으로 차고을(茶鄕)로써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